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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협동조합 기념주간을 맞이하여] 돈의 잣대만 들이대는 경제주의를 허물어뜨리는 최종병기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31 조회수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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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협동조합의 날 대구 기념식》 초청강연 원고 (2014.07.04)


돈의 잣대만 들이대는 경제주의를 허물어뜨리는 최종병기는?


정 홍 규

(사)커뮤니티와 경제 이사장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신부



이 시간에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또한 제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협동」이라고 말입니다. 「콜라보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 즉 ‘대한민국호는 희망이 있는가?’하고 묻는다면 없지만 협동이 존재한다면 희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협동이야말로 ChangeMaker이며 제4섹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이 세상의 불꽃놀이에 탄성을 지르며 마치 정어리떼처럼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실제로 종교적인 용어로 「협동」은 삼위일체입니다. 3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잠깐이나마 협동의 3가지 원리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전에 가톨릭 신부인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다음 학기에 대학생들에게 「사회적 기업과 공동체」라는 과목을 새로 개설하여 맡게 되었습니다. 지난 학기 종강 강의를 하양공설시장에서 하였습니다.



1. 현장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현장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재래시장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협동조합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현장은 생각보다 더 중요합니다. 현장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현장은 그냥 있지만 생각은 다듬어집니다. 우리의 생각이 실재에서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현장과 사고 사이에 긴장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제가 1990년부터 푸른평화 운동을 해오면서 실패를 한 것은 현장이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장과 동떨어진 생각은 이상론과 유명론을 낳습니다.

 

공허한 미사여구, 반역사적 근본주의, 선의가 없는 도덕주의,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 작음의 생협운동이 사회적 불의나 역사의 현장을 소홀히 하는 비역사적 낭만주의식 생태중심주의나 빗나간 사적인 웰빙주의로 비판받은 것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86년 원주에서 한살림 선언 이후에 1986년에 서울 제기동에 한살림농산 즉 유기농마켓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1990년 월배성당에서 푸른평화를 시작한 이래 1991년 상인동에 10평에서 푸른평화 마켓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생활협동조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마켓은 1990년 경북 북부지역에서 생산자 공동체인 안동 생명의 공동체와 직거래 장터인 셈입니다. 우리 성당 마당에서 천규석과 김종철의 한살림과 같이 유기농산물시장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구 푸른평화 생활협동조합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밀 살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한 것입니다. 돈벌이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운동 즉 생산자와 소비자, 농촌과 도시, 공해추방과 자연질서의 회복운동으로써 푸른평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2.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합니다


여기에서 두 번째 원칙을 말하고자 합니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깨닫지 못한다면 협동조합운동은 깨집니다. 잔돈을 벌려면 사업이나 주식을 하시고, 효율과 경쟁입니다. 그러나 목돈을 벌려면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깨달음이 요청됩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서 실패하는 이유는 시간보다 공간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우선시 하는 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이 겪습니까?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의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들입니다. 1960년 5월 부산에서 마리가별 수녀로 시작된 마이크로크렛딧운동인 신용협동조합운동이 그 한 예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을 거쳐 1980년 원주교구를 축으로 움직여왔던 한살림운동 즉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님의 생명운동이 가톨릭교회 안에 통합되지 못한 역사적 실례가 있습니다.

 

우린 4대강 사업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시간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발효시간, 뜸의 시간, 눈 앞에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천천히 확실하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시간에 대한 근본태도를 바꿀 때가 왔습니다. 《피로의 사회》의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우리에겐 시간 혁명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대구경북의 로칼생협인 푸른평화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함을 증거합니다. IMF때에는 휘청하였습니다. 교회의 탄압도 있었습니다. 생산자들이 자본을 따라 갈 수밖에 없을 때, 출자금을 빼내가는 조합원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톨릭 성직자가 하다 보니 세상물정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한 푼의 돈 없이 맨 땅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우유팩을 모으고, 폐식용유를 배달하면서, 트럭에 배추를 실고 성당마다 팔러 다니면서 새로운 진정의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황과 처지는 달랐지만 의지는 한결 같았습니다. 빠른 이득, 단기적인 승부에 매달렸다간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협동하는 진정의 과정에 얼마나 힘을 쏟는가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생협운동을 하면서 그 이유가 속도나 효율 그리고 경쟁과 성공의 잣대인 돈에 성찰입니다만 실제로 우리 운동의 민낯은 자본주의 논리를 따른다면 당장 매출이 얼마인가? 감가삼각비는? 마진이 얼마인가? 보조금이 얼마? 우리는 결코 절망의 시대를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운동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대의에 얼마나 도달하였는가”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평가할 것입니다.

 


3. 생활협동조합은 운동은 University가 아니라 Multiversity입니다

 

우리의 모델은 둥글둥글한 구면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델은 다면체입니다. 다면체는 모든 부분의 연결이며 각 부분은 고유성을 지니며 유닉하고 디퍼런트합니다. 다릅니다. 근대화의 실패는 다양성의 실패이며 획일화이며, 백화점식은 우리의 모델이 아닙니다. 우리 생협의 물건이 다 똑같다면 생협이 아닐 것입니다. 흔히 연대가 혼합주의나 일방적인 흡수가 아니라 각 지역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로칼푸드”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생협운동이 이윤을 목표 삼아 다양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받지 않는다면 수천 갈래로 산산조각이 난 부서진 마음으로는 진전한 사회적 통합을 이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연대는 차이를 존중하는 것인데 여기에 생협 존재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지난 번 6.4 선거를 보면서 4년마다 인물을 뽑아 새로운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 선거 때마다 진짜 인물을 식별해 내고 사람을 뽑습니다. 왜 우리는 매일 매일 진짜를 뽑을 수 없습니까? 매일 매일 진짜를 선택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흔들어버리는 최종병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돈을 사용할 때 진짜 물건, 진짜 생산자를 선택하여 돈을 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수퍼가치 메타가치를 창조하는 컨설팅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진짜 물건, 진짜 생산자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을 우리가 존중하고 돈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자기모순입니다. 그럼 모습을 숱하게 봐 왔습니다. 이를테면 생협운동하는 분들이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돈을 진짜에 돌게 하자는 것입니다. 어느 수도원입니다. 가톨릭 수도자들이 생명과 가난 그리고 피조물의 평화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사는 삶은 외제요, GMO 식품이요, 백화점물건이요 그런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진짜 생산자, 진짜 물건, 진짜 생협에 돈을 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밑에서부터 개혁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의 문제는 나이 든 신부들이 후배들에게 공을 패스를 잘 안 해 줍니다. 연장자들이 다 공을 독점하고 자기들끼리 패스합니다. 그러니까 정체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다 하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저도 나이가 60줄에 섰습니다. 공을 패스할 때입니다. 무엇이든지 퍼 줄 때입니다. 명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협을 하는 사람들,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을 잘 패스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공을 찰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부의 집중과 양극화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허무는 방법은 우리가 패스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홋카이도에서부터 후꾸오까에 이르기까지 유채꽃 바이오 디젤을 연구하러 다녔습니다. 일본은 일할 것은 있는데 사람이 없고, 한국은 사람은 있는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협운동이야말로 제4섹터입니다. 창업의 소스입니다.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협동이 우리의 일 섹터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는 우리가 패스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오신 동지 여러분 대구의 교육감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상관 없이 우리 아이들의 학교급식을 이대로 가만히 놔 둘 수 없습니다. 학교급식은 한 마다로 개판입니다. 학교급식이 이 모양인데 무슨 명품 창의적 혁신이 나온다는 말입니까? 아이들이 먹는 석식을 한 번 보십시오. 얼마나 GMO기름을 사용한 튀김요리가 많습니까? 왜 튀깁니까? 안전관리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맡을 수는 없습니까? 동의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