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씨앗이야기] 사회적경제를 부탁해
사회적경제 씨앗이야기 <11. 사회적경제를 부탁해>
사회적경제를 부탁해
갓바위 부처님께 참으로 부탁할 것이 많지만 제일 먼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경제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적 경제를 꿈꾸다! 과연 가능할까? 어떤 사람들은 즉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좌파가 아닌가하고 적색경보를 울리겠지만 그런 기우심은 내려놓기 바란다. 사회적경제는 협동에서 찾은 또 다른 자본주의이다, 지금의 주류 경제사회에 등을 돌리는 것은 사회적경제가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사고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더 중요하다. 사회적경제의 물음은 다음과 같다. 왜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려 했을까? 무엇을 위해 저렇게 할까?
2015 대구 사회적경제 박람회
'대구 사회적경제, 시민속으로'(2015.10.10.~11.)
사회적경제는 머니자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 反定立)
우리 선조들에게 몸에 배인 “품앗이”는 돈으로 살 수가 없다. 품앗이는 동네사람들 끼리 서로 서로 일을 도와주고 갚는 동네통화이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는 머니자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이다. 무조건 안티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살이에는 돈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집안에 큰일을 당하다보면 하루하루의 인연이 인간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낄 수 있다. 돈에만 의존하는 서브시스템만 작동하면 우리 현실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승자독식이니 불평등이니 약육강식 등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안정된 “공동체 서브시스템”
사회적경제는 적어도 훨씬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안정된 “공동체 서브시스템”을 재구축하자는 새로운 모색이다. 물론 정부도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주역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정부는 성장을 축으로 하는 경제 등으로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을 보완해 주는 장치들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의 모든 근본 문제를 신속하게 탄력적으로 맞춤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집단이 정부의 효율적인 운영을 방해하고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의 발전에 저해되지 않던가? 이번에 발표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내수정책도 오히려 더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눈앞에 경기위복을 위해 근시안적인 머니를 선택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담보해야만 하는 국채의 잔고를 누가 책임지는가?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수사 없듯이 새 술을 담을 새 포대가 필요하다. 그렇다하여 사회적경제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회적경제라고 해서 우리의 현대생활을 과거 농경사회처럼 자급자족의 생활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동네에 멧돼지가 출몰하면 사냥개 한 마리가 짓는 것만으로 사냥이 불가능하다. 정부와 비영리조직 그리고 동네사람들의 협동작전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는 협동의 기적이 일구어낸다. 2007년 우리 정부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였다.
사회적기업 당사자 중심의 판로개척 및 경영지원 전문회사 도입 ‘경상북도 사회적기업 종합상사’
지원 업무협약 및 창립총회(2015.10.13.)
사회적기업 제품의 판로개척 및 홍보 공간인,
'스토어 36.5 대구동인동점 오픈기념식
(2015.8.26.)
2015 경상북도 사회적경제기업 박람회
'사회적경제, 한 뼘 더 세상속으로'(2015.9.11.)
사회적경제의 요체는 무엇인가? 경제와 사회적경제는 무엇이 다른가?
일반경제는 이익을 실적으로 가늠하지만 사회적경제는 사회에 얼마만큼 의미 있는 가치나 효과를 주었는가를 챙긴다.물론 일반 경제도 사회에 공헌하지만 실제 구조는 그 기업에 이익이 되도록 움직인다. 사회적경제의 알파요 오메가는 사회에 문제를 해결하고 그 영향을 첫 번째로 생각하고 사업에 몰두한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경제는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면서 자립하기 위해 재무와 영리도 창출하는 조직이다.
이제 경상북도도 사회적경제과라는 부서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사)커뮤니티와경제 정홍규 이사장
본 글은 푸른평화(www.ecopeace.or.kr)의 ‘정홍규 신부의 녹색편지’에 기고된 글을 발췌하였습니다.